[편식쟁이 루이옌의 장르탐방] 고전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1257)>
편식쟁이 루이옌의 장르탐방
두번째, 고전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
안녕하세요, 루이옌입니다.
이번 장르 탐방의 주제는 고전 영화입니다. 먼저, '고전'이라는 장르가 있느냐 하고 물으신다면, 있다! 라고 대답하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장르란 관객이 영화를 보고 "이건 어떤 장르야" 하고 범주화하는 인덱스 역할을 한다고 보는데요, 고전이라는 말은 영화가 제작된 시기적 특징에 더 초점을 두기 때문에 장르라 칭하기에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고전 영화 추천해줘' 라고 하면 단순히 오래된 영화를 말하는게 아닌만큼, 오래되고 / 영화사에 족적을 남길만한 / 존재감 있는 영화를 따로 분류한다면 바로 고전이라는 범주로 묶어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장르 탐방 2. 고전영화
고전이라 불릴만한, 뭔가 저화질(?)의 영화는 막상 보면 괜찮은 영화가 많았어요. 하지만 반세기도 훨씬 이전에 제작된 <티파니에서 아침을>, <로마의 휴일>과 같은 흑백 영화는 좀 더 큰 진입장벽이 있었죠. 새로 개봉한 영화 중에서도 못보는 작품이 많은데...하며 우선순위를 미루기 쉽상이었어요. 그러다 정말 우연히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보게 되었는데 단순해보이는 연출이지만 몰입력도 좋고, 12명의 등장인물이 요즘 인간 군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소개하고 싶었어요.
12명의 성난 사람들감독시드니 루멧출연헨리 폰다, 리J.콥, 에드 베글리, E.G. 마샬, 잭 워든, 마틴 발삼, 존 피들러, 잭 클러그먼, 에드워드 빈스, 조셉 스위니, 조지 보스코벡, 로버트 웨버개봉미개봉
12명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 1957)
영화는 미국 배심원들의 회의 과정을 그립니다. 한 소년이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에 대해 guilty, 와 not guilty로 유죄 판단을 내리기 위해 12명의 배심원이 모였죠. 당시 한 사건당 3달러를 받았다고 하니, 이 배심원들은 사건을 빠르게 처리하고 돌아가기 위해 투표를 합니다.
첫 투표의 스코어는 11대 1로, 유죄가 우선했습니다. 그 때, 무죄라 판단한 한 사람이 합리적 의심을 던집니다. 노인의 목격담, 가난한 동네에 학대받던 아이, 증거로 채택된 칼까지 모든 정황이 유죄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나까지 유죄라 생각하면, 이 아이는 바로 사형에 처해지기 때문"에 검토의 여지를 열어둔 것이죠. 일부 사람들은 3달러 받는 사건에 만장일치를 보지 못해 굉장히 귀찮게 되었다며 짜증을 내곤 하지만, 토론의 장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12명의 배심원은 증거물과 증언을 하나씩 분해해 복기하며 소년이 정말 범인인지 확인하기 위한 격렬한 대화를 시작합니다.
이런 사건일 때는 개인의 편견이 드러나게 마련이죠.
그리고 언제나 편견은 진실을 가립니다.
나도 진실이 뭔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겁니다.
이것도 확률의 도박이고 우리의 결정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죄인을 풀어주게 될지도 모르죠.
그러나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다면,
그게 우리 법체계의 우수한 점인데,
배심원들은 확실하지 않으면 유죄선고를 내릴 수 없죠.”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1957>
장르탐방 후기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12명의 배심원과 같습니다. 여러 이슈에 여론의 힘이 강하게 작동하고,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힘껏 자신의 주장을 외치고 있으니까요. 최근 불거진 연예인 학폭, 한강 사건 등에 달린 댓글을 보면 합리적 의심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영화의 초반부처럼 답을 정해놓고 논리를 펼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진영논리에선 메세지보단, 메신저에 집중하는 경우도 많죠. 그렇기에 말을 하는 사람에 따라 같은 주장에도 찬반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우스운 결과도 보이고요. 우리는 모두 이 배심원들처럼, 유죄든 무죄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을 마음 한 편에 두고 편견없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내부로 시선을 돌려보자면, 90분 동안 장소의 변동 없이 '찜통같은 회의실'이라는 설정 하에 오로지 대사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신기하게도 높은 흡입력으로 지루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소년의 유죄여부를 확정하기 위한 대화가 점점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소년은 정말 유죄일까? 추리해보며 한 번의 재미를, 나는 12명 중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며 한 번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길이 남는 영화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작품입니다. 고전소설이나 영화는 제작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시간을 뛰어넘는 진리가 담겨 있기에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