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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터뷰] 성소수자 인권의 달(Pride Month) 기획, 퀴어가 보는 퀴어 콘텐츠

미디어 척척학사 2021. 6. 21. 18:40

 

 

 

영화 <윤희에게>는 청룡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각본상을 수상하였고,

드라마 <마인>은 성소수자 캐릭터를 주연으로 하여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퀴어 콘텐츠가 많아지고,

나름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이번 두고터뷰는 6월 프라이드 먼스를 맞아,

퀴어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니온 님, 그리고 찬란 님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성소수자에는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 내담자는 여성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로 구성되어, 동성애가 등장하는 콘텐츠만을 다뤘습니다.

 

 

 

[국내 드라마] #마인 #선암여고탐정단 #인생은아름다워 #슬기로운감빵생활

 

국내 드라마에서도 성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마인>부터, 반대 여론에 부딪혔던 <선암여고 탐정단>, <인생은 아름다워>, 그리고 키스신 연출 방식을 변경한 <슬기로운 감빵생활>까지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드라마 <마인>, tvN

 

니온: TV 드라마는 영화나 웹툰, 웹소설에 비해 장벽이 아직까지 높다고 느껴요. 그런 의미에서 <마인>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단막극이 아닌 정규 드라마에서 레즈비언이 나온 건 처음일 거예요. 주연 캐릭터이고, 성소수자라는 게 대사와 상황을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는 점도 좋았어요. 또, 정서현(김서형 분)과 최수지(김정화 분)의 사랑이 드라마 내용에서 큰 줄기가 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두고: <마인>은 물론 로맨스 장르가 아니기도 하고, 과거 연인 사이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악수랑 포옹 정도만 나와요. 애정씬이 나오는 순간, 반사회적인 표현으로 치부되기 때문에 아직은 “무해하게” 다가가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선암여고 탐정단>은 동성 키스신 장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어요.

 

찬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동성 커플은 무조건적으로 숨기고, 뜻하지 않게 아웃팅을 당하거나 비난 당하는 장면들이 주로 나왔어요. 외국 드라마에서 동성 간의 키스신 등이 자유로운데, 우리나라 드라마에선 암시하는 장면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도 한양(이규형 분)과 지원(김준한 분)의 키스신을 커튼 실루엣 그림자로 표현하려고 했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기 위해서 발로만 묘사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고 해요.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니온: 맞아요. TV에 동성애 관련 장면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위화감을 조성하고 시청의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점,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는 비난 광고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고요. 게이가 등장한 드라마를 보고 게이가 되었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런 논리라면, 우리는 이성애 콘텐츠가 주류인 세상에서 자랐는데, 콘텐츠를 보고 성지향성이 바뀌는 거라면 동성애자가 있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두고: 그 드라마를 보고 본인의 성지향성을 깨달을 수는 있겠죠. 커밍아웃할 용기가 생겼다거나. 퀴어 콘텐츠가 아예 없었다면, 성지향성이나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은 이런 선택지가 아예 없다고 생각하며 자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대 입장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니온: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마인>에 출연 중인 김정화 배우의 남편이 SNS에 쓴 댓글이 논란이 되었는데, “동성애를 반대한다”라는 게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해주는 분위기가 생겼다는 거예요. 또,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체감하진 못해서 ‘미디어이기 때문에 관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두고: 그렇죠. 아무래도 드라마 주인공이 성소수자 캐릭터인 거랑, 회사에서 “저 여자친구랑 결혼할 건데 신혼여행 가려고 휴가 좀 쓸게요.” 이거랑 별개로 생각하겠죠 아직은.

 

찬란: 현실이 더 관대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동성 커플이 웨딩 사진이나 결혼식장을 알아볼 때 업체 측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 없이 당연하게 응대해 주는 일화들을 봤어요. 동성 결혼이 법제화가 되면 제일 성수기일 곳이 웨딩 업계라는 말도 있죠. 그리고 현실에서 저의 커밍아웃을 잘 받아주고 거리낌 없이 대해주는 친구들이 많기도 하고요. 미디어에선 아직 이런 긍정적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덜 다뤄지는 것 같아요.

 

 

[퀴어배이팅과 워맨스] #런온 #야식남녀

 

퀴어배이팅은 queer(성소수자)와 bait(미끼를 놓다)의 합성어로, 성소수자 소비자를 유인하고 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성소수자 관계나 등장인물이 암시되는 수단을 설명하는데 쓰이며, 이러한 설정은 등장인물의 행동을 수정하거나(이성애 관계로 바꿔버림), 장난(때때로 반복되는 농담이나 비유)으로 끝내버리거나, 등장인물의 행동을 수정하지 않고 (인터뷰, 패널 등에서) 가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부인됩니다.

(Brennan, Joseph (2016). “Queerbaiting: The ‘playful’ possibilities of homoeroticism”.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Studies》)

드라마 <런온>, JTBC

 

두고: 저는 드라마 <런온>이 기억에 남아요. 극중 서단아(최수영 분)는 레즈비언이라고 거짓 커밍아웃을 한 설정이에요. 드라마 초반에는 진짜 레즈비언인 줄 알았는데, 남자랑 결국 이어지니까 퀴어베이팅(등장인물을 퀴어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 퀴어 재현을 하는 것은 아닌)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고예준(김동영 분, 극중 게이 캐릭터)에게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굴레였을텐데 나는 그거 핑계로 삼았어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해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와 젠더 감수성이 높은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무성애자 캐릭터도 등장했고요.

 

니온: 드라마를 본 건 아닌데, <야식남녀>에서도 주인공이 ‘사실은 게이가 아닌 게이’ 역할로 나오더라고요. 굳이 그런 설정을 넣었어야 했나 싶었어요.

 

두고: 브로맨스와 워맨스, 걸크러쉬 등도 퀴어배이팅으로 지적되기도 해요. 동성 간의 케미를 강조하지만, 동성애의 존재를 지우기 때문이죠.

 

찬란: 워맨스라는 워딩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먼+로맨스잖아요. 그런데 진짜 여성 간의 사랑이 존재함에도 그건 지워지고, 진한 우정에 오히려 로맨스라는 이름이 붙은 거예요. 퀴어가 가려지는 것 같아 아쉽긴 하죠. 싫은 건 아니에요. 얼마나 좋아요, 여자들끼리 연대하고. 다만 워딩이 조금 아쉬운 거죠.

 

 

[외국 드라마] #잇츠어씬 #와이우먼킬 #원데이앳어타임 #모던패밀리

 

성소수자 인권이 우리나라에 비해 신장된 국가(미국, 유럽 일부 국가)의 드라마에선 자연스럽게, 다양한 방식으로 성소수자를 그리고 있습니다. 노출 빈도 역시 우리나라 콘텐츠에 비해 많고, 표현 방식에 있어서 한층 더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드라마 <모던 패밀리>의 게이 부부 미첼과 캠, abc

 

두고: 우리나라는 주조연이 명확히 나눠져 있는 반면, 외국 드라마는 메인이 여러 명이거나, 시즌 별로, 에피소드 별로 중심이 되는 인물이 바뀌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 다양한 인물들이 더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니온: <잇츠어씬>도 그렇고, <와이우먼킬>도 그렇고, 꾸준히 퀴어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 같아요. 외국은 성소수자를 가시화하는 것을 목표로 -그리고 이미 많이 가시화가 되기도 했고- 우리 주변에 함께 있는 성소수자들, 당연한 사회구성원으로 드러내는 느낌이에요. 우리나라는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찬란: 저는 가족 코미디를 많이 보는데, <원데이앳어타임>이나 <모던패밀리>에서 처음엔 가족에게 말하기 힘들어하거나 편견에 부딪히지만, 결국은 주변 사람들과 가족의 인정을 받고 파트너랑 결혼하는 장면들이 나와요. 결국엔 편견이 해소되고 인정받는 장면이 나오는 게 좋았어요.

 

 

[국내 영화] #두번의결혼식과한번의장례식 #연애담

 

국내 영화에서 동성애자를 다룰 때 현실적인 어려움이 강조되기 때문에, 우울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회적 편견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냥 밝은 이야기만을 다룰 수는 없겠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는 부모님의 압박, 입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이와 레즈비언이 위장 결혼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연애담>에도 남자와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압박 때문에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어느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고: 영화에서 동성애가 우울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현실의 어려움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레즈비언 로맨틱코미디가 나오면 재밌게 잘 볼 수 있을텐데’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미디어에서만큼은 즐겁고 평화로운 걸 보고 싶은 거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까지 힘들고 싶진 않으니까. 단막극 <안녕 드라큘라>를 보면서 너무 현실적이라 보기 힘들었다는 반응도 있었잖아요.

 

니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힘든 사랑이 많이 등장하긴 하는 것 같아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은 그래도 유쾌한 면도 있으면서, 현실의 안타까운 면도 잘 담은 것 같아요. 우울한 분위기의 영화로는 <연애담>이 떠오르네요. 사회가 이런데 어쩌겠어요.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찬란: 저도 밝은 분위기의 콘텐츠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퀴어 영화라고 퀴어들만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힘들고 어두운 내용을 다룬 퀴어 콘텐츠를 본 이성애자들이 ‘저 사람들은 힘든 사랑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될까봐요. 어쩌면 우리의 삶이 힘들 것이라는 것도 편견일 수 있거든요. 커밍아웃을 했을 때 저는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힘들었겠구나”라는 반응이 돌아온 적도 있어요. 물론 저를 위해서 이해해 주려는 노력으로 한 말이었겠지만요. 힘든 것도 개인 차가 있고, 우리가 무조건 위로와 동정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미디어에서조차 힘들고 어두운 이야기만 다뤄서 모르는 사람에게 동정과 위로를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밝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퀴어 콘텐츠는]

 

니온: “얘네 진짜 귀엽고 예쁘게 연애한다. 설렌다.” 이런 콘텐츠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퀴어가 이성애 콘텐츠 봐도 설레는데, 충분히 퀴어물도 이성애자에게 그렇게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알듯말듯한 관계에서 발전해서 달달하게. 개연성 있게. 그리고 이 세계를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즐거운 작품을 하나 썼으면 좋겠어요. (그 어느 방송국에서도 틀어주지 않을 것이다... ) 어차피 같은 사랑이고, 이성애 로맨스도 다양한 소재로 나오는 것처럼, 퀴어도 세상의 반대, 부모님의 반대 이런 내용 말고, 다양한 소재로 다양하게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꼭 메인이 아니어도, 특별하지 않게 묘사될 수 있으니까요. 특별하고 남다르게, ‘다른 사랑’으로만 묘사되는 것도 별로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똑같은데.

 

찬란: 저는 국민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모던패밀리>는 10년 동안 사랑을 받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가족들의 서사,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 안아주는 느낌의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동성을 만나 사랑을 하는 삶이 지속될텐데,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고민을 많이들 할 거예요. <모던패밀리>에서 제이가 변화한 과정, 아들의 남편과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 성소수자 부모님의 지침서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자극적인 설정이 들어가지 않은 힐링물 느낌으로, 성소수자든 아니든 편히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까지도 SBS에선 <보헤미안 랩소디>의 동성 키스신을

삭제한 채 방영하는 등, 갈 길이 멀기도 합니다.

퀴어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미디어에서 자연스럽게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