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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는 책방] (1) 우리를 살게 하는 것들-임순례 <리틀포레스트>와 레이먼드 카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호떡/영화 읽는 책방

by 미디어 척척학사 2021. 5. 1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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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예요"

 

 

[출처=네이버영화]

 

 

개봉한 지 3년 된 영화를 이제야 봤다. 영화는 진즉 왓챠 ‘보고싶어요’에 눌러 뒀지만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몇 주 전 스터디가 끝나고 집에 걸어오던 길 별안간 ‘어디든 떠나서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영화를 틀게 됐다.

 

영화의 내용은 별 거 없다.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임용고시생 ‘혜원’은 시험에 떨어진 채 시골에 돌아온다. 금의환향이 아닌 단출한 귀향이었다. 자신의 소식을 엄마에게도 남자친구에게도 알리려 하지 않은 채 잠수를 타듯 돌아왔다. 잔잔한 이 영화에 내가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영화의 초반부에 제시된 이런 주인공의 배경 때문이었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사실 공중에서 툭 튀어나오는 종류의 생각이 아니다. 몇 주 전의 난 연이은 최종탈락 소식을 받아들었고 기대했던 관계에서마저도 미끄러졌다. 정말이지 혜원에 공감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영화는 주인공이 마음의 바닥을 찍은 시점에서 시작한다. 시골로 돌아온 혜원은 편의점 도시락 대신 농작물로 한 끼 한 끼 만들어 먹는다. 어릴 적 친구들도 다시 만나 시골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혜원은 자기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찾는다. 어쩌면 영화라 너무 쉬워 보이기도 하는 주인공의 회복과 성장이지만, 이 과정에서 난 음식의 무게(!)를 다시금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함께 볼 소설은 레이먼드 카버의 책 『대성당』에 수록돼 있는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다.

 

 

[출처=네이버책]

 

 

이 책의 중심인물은 아내와 남편 그리고 빵집 주인이다. 앞선 영화와 비슷하게, 이 소설의 시작점 역시 주인공이 인생의 밑바닥을 밟았을 때다. 주인공 부부는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였던 아들이 의사도 발견하지 못한 특이증상으로 죽게 된 후, 안정적인 궤도를 달리던 그들의 삶은 갑작스럽게 붕괴된다.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한 사람을 꺾어버리거나 내팽개쳐버리는 힘들”은 사실 한 뼘 차이로 그들 옆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혼자만의 삶 속에서도 연결의 순간은 찾아온다. 카버의 소설은 타인과 나의 경계가 사라지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을 보여준다. 남편과 아내가 빵집에 앉아 주인이 건네 준 ‘시나몬롤’을 먹는 순간이 바로 그 연결의 순간이었다. 갓 구워낸 시나몬롤과 커피가 남편과 아내의 허기진 마음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음식’이라는 것이 내게도 항상 그런 존재여서 그런지 소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끄덕거렸다.

 

 

[출처=픽사베이]

 

 

나는 음식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음식을 먹는 것도 좋고 보는 것도 좋고 공부하는 것도 좋다. 요새는 하지 않지만, 예전 몇 년간은 요리하고 빵 굽는 게 취미이기도 했다. 이별한 후 생활이란 게 귀찮게 느껴질 때도 마시멜로를 띄운 따뜻한 코코아는 잠시나마 나의 고통을 잊게 만들어줬고, 야채를 씻고 고기를 썰고 면을 볶는 요리의 단순한 과정은 앞이 보이지 않는 수험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줬다.

 

 

내가 유별나게 음식을 좋아해서인지 모르지만, 음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전해주는 가장 실재적인 매개가 아닌가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장을 봐서 (혹은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어 먹는다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행위가 한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봤으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남은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 해도, 가끔 빛이 잘 드는 곳에 앉아 과일을 베어 먹는 날이나 이른 아침의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먹을 수 있는 날들이 끼워져 있다면, 기꺼이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출처=네이버영화]

 

 

이 소설의 원제는 “A Small, Good Thing”이다. 정말 사소해보이지만 나의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것들. 누구나 유독 사는 게 버거울 때가 있다. 영화 속 혜원도, 소설 속 부부도, 그리고 나도 인생에 마가 낀 것 같은 시기를 건너는 중이다. 지금의 나를 살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맛있는 음식이기도 하고 함께해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리틀 포레스트> 속 음식의 비주얼에 홀리기 마련이지만 주인공 옆의 두 친구도 빼놓을 수 없다. 늘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들은 "A Big, Good Thing"인 걸로!

 

 


 

 

 

※ [영화 읽는 책방]에선 영화와 책을 함께 소개합니다.

영화로 책을 읽고, 책으로 영화를 읽는 코너를 지향하지만 가끔은 얼레벌레 일기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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