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건 참 어렵다. 소설, 시, 서평, 기사 등등… 이것저것 써봤지만 흰 화면과 깜빡이는 커서 앞에선 항상 막막하다.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 글 쓰는 일이라 생각해 언론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언론사 필기는 논술과 작문을 보는데, 준비 1년차까지는 필기를 거의 통과하지 못했다. 필합률 10%나 됐을까. 내가 필기를 안정적으로 붙게 된 건 고민이 축적되고 나서부터였다. 입사를 위한 글에도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데, 하물며 다른 글들은 어떨까. 오늘 소개할 영화와 소설은 ‘인생을 갈아 넣은 글’을 완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글의 종류는 다르지만 그들이 쓴 글에는 치열함과 밀도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와 정진영 작가의 소설 <침묵주의보>는 한 여자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또래 남학생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한 여중생의 자살로 시작하고, 소설은 뛰어난 능력에도 지방대생이란 이유로 정규직 전환이 좌절된 언론사 인턴기자의 자살로 시작한다. 죽음이라는 사건 이후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죽음을 덮기에 급급하다. 여학생을 성폭행한 남학생들의 아버지들은 경찰과 언론에 새나가지 않게 단속하고 합의금을 마련하는 데에 바쁘다. 소설 속 사람들도 마찬가지. 언론사 사주와 직원들은 자살한 인턴기자의 행실을 문제 삼는 언론플레이에 여념이 없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 ‘미자’와 소설의 주인공 ‘대혁’이다. 침묵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들은 글을 쓴다. 소녀 감성에 화사한 옷을 입고 다니길 좋아하는 60대 여성 미자는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된다. 시 한 편을 쓰는 게 목표인 미자는 아름다운 시상을 찾아 나서지만, 곧이어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다. 미자가 키우는 중학생 손주가 성폭력 가해자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여학생의 죽음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바로 볼 것인가. 어느 것을 선택해도 안식이란 요원한 상황에서 미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상을 써내려 간다.
소설의 주인공 대혁도 비슷하다. 그는 한때 ‘진짜 기자’를 꿈꾸는 청년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인터넷 어뷰징 기사나 쓰는 ‘기레기’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교육시키던 인턴기자가 회사에서 죽고 나서도 그는 언론사의 일원으로서 사건 덮기에 일조했다. 그러나 그는 치열한 갈등 끝에 결국 언론사 인턴제도에 얽힌 비리를 폭로하는 글을 쓰고 회사를 떠난다. 미자와 대혁, 두 주인공 모두 가해자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이 두 명은 다른 사람들과 분명히 구별된다. ‘죽음이라는 사건에 어떻게 응답하느냐’가 그 지점이다.
‘사건’과 ‘진실’ 그리고 ‘응답’
사건이 발생하고, 진실이 드러나고, 주체는 응답한다.
신형철 평론가는 장편소설을 평할 때 이 세 가지 측면을 살핀다고 말했다. 그 일이 있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 ‘사건’인데,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은 그 사건이 어떤 ‘진실’을 산출했기 때문이며, 이제 그 진실 앞에서 주체는 어떤 식으로건 ‘응답’을 할 수밖에 없다. 사건의 충격, 진실의 무게, 응답의 울림이라는 측면에서 한 소설이 무엇을 얼마나 성취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소설의 성취를 판단하는 데 이 기준을 적용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잣대가 한 인간의 성취, 한 사회의 성취를 평가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응답’의 기준에서 말이다. 픽션에서와 달리 인생에서 사건은 무작위로 들이닥치지 않는가. 모든 사람들은 살면서 ‘사건’을 맞닥뜨린다. 도저히 그 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충격, 고통 혹은 무언가를 수반하는 사건 말이다. 사건은 사고와 다르게 해석을 요구한다. 내가 마주한 사건에서 어떤 진실을 찾아내고 어떤 응답을 할 것인지는 곧 어떻게 살 것인지의 문제다. 앞선 두 작품의 주인공들은 타인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끝내 고통스럽지만 존엄한 응답을 택했다.
어떤 죽음은 사회적이다. 어쩔 수 있었다고, 피하고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통곡하게 되는 수많은 죽음들이 이 사회엔 너무 많다. 올해만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트랜스젠더 육군 하사와 알바를 하다 산재로 죽은 청년이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는 지금 사람들의 죽음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 사건을 외면하고 지나가버리는 퇴행의 길을 밟고 있는 건 아닐까.
시를 쓴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쓴다고 마음을 먹는 게 더 어려운 거죠.
영화 속에서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곧 본다는 것. 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볼 마음을 먹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응답의 시작은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함께 풀어야 할 문제를 외면해버리고 마는 무감 속에서도, 세상의 아픔을 바로 보려는 마음들이 모여 더 나은 곳을 만들 것이라 믿는다.
※ [영화 읽는 책방]에선 영화와 책을 함께 소개합니다. 영화로 책을 읽고, 책으로 영화를 읽는 코너를 지향하지만 가끔은 얼레벌레 일기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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